한국여성단체협의회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작성일 : 18-07-30 09:21
성폭력 피해자입니다. 한국여성단체협의회에 도움요청합니다.
 글쓴이 : 따사로운햇살
조회 : 145  
아버지(김영구)께서는 청와대에 계시고
어머니(박명수)께서는 교수세요.
저는 김미성입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고비가 많았습니다.
집안도 그렇고(친일파가 권력층에 많았던 것이 첫 번째 이유라 생각합니다.)
부모님께서 운동권에 계셨기 때문입니다.(민주화운동)

아버지께서는 서울대 법대 재학시절부터 옥살이를 몇 번이나 하셨고 대공분실 고문실에도 몇 번 갔다오셨어요. 2번이상 다녀오시고 생존해 계신 몇 안되는 분이세요. 그런 어려움에도 졸업후 검사로 재직하시고 청와대에서 근무하셨어요.

그러던중
1979년 10.26 박정희대통령 암살되시고
1979년 12.12 쿠테타로 전두환이 정권잡았고
1980년 5.17 계엄확대로 민주화인사 체포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광주에서 민주화운동이 있을 것이며 전두환은 군경이 총칼로 진압할 것을 지시했다는 첩보를 듣고 광주로 향하셨습니다.
도착했을땐 이시 시위대를 향해 발포하며 변태적 살인행위를 하고 있었습니다.(부검의에 의하면 임부의 배를 여러차례 칼로 찌르거나 여성의 가슴을 도려내는등....tv에도 나왔죠)
도저히 막을 수 없던 아버지는 사진을 찍으며 증거수집하셨습니다.
=>이 내용은 영화 ‘택시 운전사’의 소재가 되었습니다.

아버지의 이 일은 전두환의 측근에게 들어가게 되고 낮엔 대학, 밤에는 야학에서 학생을 가르치던 어머니를 체포하여 메달아 놓고 몽둥이로 폭행하고 불에 달군 인두로 지져 엉덩이에 성인남성 손바닥보다 큰 화상을 입히고 왼쪽 엄지 발톱을 뽑는등 고문을 했습니다.
이유는
민주화에 대한 수업을 하고 운동권을 지원하였다는 것입니다. 맞지만 저정도로 고문실까지 간 경우는 드물다고 합니다. 고문실까지 끌고간 이유는 바로 아버지때문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이런 일을 하고 운동권지원을 한다고 자백하라는 거죠. 어머니는 끝까지 거부하셔서 더욱 심하게 오랬동안 고문 당하셨고요. 몇일후 운동권과 여러 분들의 도움으로 구출하되셨습니다. 그러나 얼마후 구속되셨고요.

그리고 국방부 차관이셨던 할아버지 파직되시고
그리고 검사셨던 아버지도 파직되셨습니다.
살해협박은 더욱 심해졌고 야반도주하듯 호적이나 주소는 다른 집안에 올리고 충북 제천으로 내려오셨습니다. 집도 몇 채 두어 이동하듯 생활하셨고 그 쯤 제가 태어났습니다. 저는 방에서만 컷고 화장실가실때도 자물쇠를 따로 달아 잠그고 다니셨다고 합니다. 그렇게 몇년정도 지났을 때 전두환쪽에서 찾아왔다고 합니다.
5살이던 저는 성폭행을 당했고 아버지는 더 이상 이렇게는 안되겠구나 싶으셔서 국정원으로 들어가셨습니다. 국정원요원으로도 몰래 운동권지원하시던 아버지.
7살이 되던해 외숙모라 부르던(호적상 외숙모, 실제는 남이에요) 분이 어디 같이 가자고 하셨고 저는 그대로 따라갔고 그곳에서 제 머리가죽이 벗겨졌습니다. 위쪽에 500동전크기, 뒤통수에 여성손바닥크기정도요. 땜빵이라고 많이들 그러시죠. 전 크게, 굉장히 크게 있어요, 과다출혈로 병원에서 못살린다고 10분도 안되어 숨이 멎을 거라고. 가망없다고.
그렇지만 아버지의 피를 직접 수혈받고 몇일 몇주만에 의식을 찾았습니다.
저를 살렸다는 것으로 가족들이 많은 고통 당하는 이유가 됩니다. 저를 살렸기에 전두환에게 이일에 대한 복수를 안하기로 했는데도 전두환과 전두환 아들들, 측근들은 계속 하더군요.
9살이 되던해 지인이 자택의 음식에 약을 넣어 의식을 잃고 쓰러짐->위세척, 침을 맞고 의식은 돌아왔습니다.
11살 때 다시 서울로 이사->성폭행->지방(충북 충주)로 다시 이사
가족과 저의 이야기가 언론등에 노출될 것을 우려해서 그랬다는 군요.

학교 생활도 힘들었습니다. 타지로 인사이동을 시키겠다, 여기서 못살게 하겠다며 교사와 학부모를 협박하여 저와 동생들을 학대하더라고요.
저는 4살 때 받침 두 개인것만 헷갈릴 정도로 한글을 모두 알았습니다. 그런데 4학년때까지는 대부분이 0점이었어요. 10점,20점도 아니고요. 나머지공부도 거의 항상 했고요. 그후에도 왕따,학대는 계속이었습니다.
12살 때 어머니께서 국회인사청문회에서 증언하시기로 했다는 이유로 납치되셨고 동생을 인질로 잡고 아버지께서 보는 앞에서 칼로 다리를 잘랐습니다. 뼈가 있어 한번에 잘리지 않았다고 의사가 그랬대요. 셋째 동생8살때요.
=>드라마 나쁜녀석들:악의도시의 소재가 되었습니다.

직장생활 역시 쉽지 않았습니다. 국민은행 충주지점에서 근무할 때 폭언,폭행(뺨), 화장실몰카, 탈의실에서 동료 여직원이 동영상 촬영하고..
갑자기 더욱 심해진 이유 중에는 둘째 동생이 서울대에 합격해 서울로 올라가게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동생은 차에 치여 뼈가 뿌러지고 병원에 입원해 있는데 병원으로 찾아가 문을 잠그고 배를 칼로 긋고.한뺨정도.....서울대 입학 포기하라고. 여기서 나갈 생각말라고. 결국 휴학했고요.
넷째 동생은 태어나자 마자 큰집에서 커서 저도 몇 번 보지 못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힘들고 지쳐 크게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았습니다. 내 동영상이나 사진이 퍼질 것을 염려해서가 아니라 너무 힘들고 지쳐서요.

이제는 적극적으로 대처하려합니다. 전두환과 그측근에 대항하려는데 대한민국 한국여성단체협의회에서 함께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